멸치의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에 대한 설은 여러가지다. 1814년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서는 업신여길 멸 자를 써서 ‘멸어’라고 했다. 1855년 조재삼이 쓴 ‘송남잡지’엔 ‘멸려치’로 표기돼 있으며 고려가 망할 때 처음 잡힌 고기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멸치가 많이 잡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문헌 자료의 시기가 조선 후기라는 걸 감안하면 과도한 추측이다. 성질이 워낙 급해 물 밖에 나오면 바로 죽는다 해서 멸할 멸자를 써 ‘멸어’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역시 추측일 뿐 멸치의 어원이 그게 맞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에도 부분적 진실은 담겨 있다. 잡아 올린 멸치는 금방 상하기 때문에 빨리 요리하거나 식초 또는 소금에 절여 저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멸치는 청어과 물고기로 약 140종이 있다. 주로 얕은 바다에서 무리를 지어 살며, 플랑크톤을 주식으로 한다. 멸치 하면 칼슘을 먼저 떠올리지만 멸치에는 칼슘 외에도 영양이 풍부하다. 100g당 단백질이 20∼25g이나 되고, DHA·EPA와 같은 오메가3 지방산 함량이 높다.
하지만 이들 다가불포화지방은 쉽게 산화되므로 맛이 잘 변한다. 그래서 청어과 물고기는 대개 훈제·염장·통조림 등으로 저장성을 높인 다음 유통된다. 산지에서는 신선한 멸치를 날로 먹기도 하지만 우리가 먹는 것은 대부분 마른 몇치인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멸치를 건조하는 과정에서 단백질이 분해돼 맛이 깊어지고 저장성도 향상된다.
멸치는 감칠맛을 내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다. 찌개와 국을 끓일 때 멸치를 빼놓을 순 없다. 이렇게 멸치가 특유의 감칠맛을 내는 것은 아미노산인 글루탐산과 이노신산이라는 핵산 성분 때문이다. 이 성분들은 자연적인 감칠맛을 제공하며, 특히 건조나 발효 과정에서 더욱 농축된다. 그렇다고 멸치맛을 우리만 아는 건 아니다. 일찍이 고대 로마 사람들도 지중해 멸치를 발효한 생선젓인 ‘가룸’을 만들어 먹었다. 일본에서는 멸치를 다시마와 함께 국물을 내는 기본 재료로 사용한다.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에서도 멸치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자 피시소스 재료로 들어간다. 이탈리아·프랑스에서도 건조 멸치를 넣어 만든 소스를 빵이나 채소와 함께 먹는다.
대서양·인도양·태평양 등 세계의 여러 해역에서 멸치가 잡힌다. 그만큼 신선한 멸치를 그대로 사용한 요리도 다양하다. 스페인에서는 신선한 멸치의 내장을 제거하고 식초·올리브유·마늘·파슬리에 절여 빵과 함께 타파스로 먹는다. 신선한 멸치에 튀김옷을 입혀 세이지잎과 함께 튀겨내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골프공인쇄 멸치 속에 빵가루·치즈·마늘을 채워 넣고 오븐에 구워 먹는다. 신선한 멸치를 레몬즙·올리브유·소금·후추에 절여 먹기도 한다.
우리도 봄에 잡은 멸치를 햇멸치라 하여 회로 먹는다.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실내포차 ‘실비바 파도’에서는 경남 창원·통영에서 당일 들여온 신선한 생멸치를 회로 맛볼 수 있다. 반짝반짝하게 기름이 도는 멸치살이 비린내 없이 부드럽게 씹힌다. 공기 노출로 맛이 변하기 전에 얼른 먹다 보면 한 접시가 금방 비워진다. 늘 짧아서 아쉬운 봄처럼 입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맛이다.